동네방네 김형규 기자 | 부여군과 (재)백제문화재단은 백제왕도 핵심 유적의 일환으로 진행한 '부여 나성(북나성, 제12차) 발굴 조사' 성과를 오는 9월 4일 오전 10시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발굴 현장에서, '부여 가림성 제9차 발굴 조사' 성과를 같은 날 오후 2시 충남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 산 7-10번지 현장에서 일반인에게 공개한다.
먼저 부여 나성은 백제 사비도성의 외곽성으로, 도성을 방어하고 내·외부를 구분하기 위해 조성된 핵심 시설이다.
사비 천도(538년) 전후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사비도성이 계획도시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로 평가된다.
이번 조사는 북나성과 부소산성의 연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진행됐으며, 그 결과 직접 연결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조사 과정에서 부소산성 판축성벽과 새로운 성문(북동문지)이 확인됐다.
이는 사비도성의 북쪽 방어와 부소산성으로 연결되는 내부 교통체계를 밝히는 데 중요한 성과다.
북동문지는 부소산 북동 능선에서 확인됐으며 최소 세 차례 이상 수·개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초축은 백제 사비기 판축성벽과 함께 조성됐고, 특히 2단계 성문은 양측 면석과 대지 조성 흔적이 뚜렷해 백제 사비기 성문 축성 기술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후 통일신라 시기까지 지속적으로 개축이 이어졌다. 또한 부소산성 판축성벽의 세부 축조 공정과 보강·증축 흔적도 확인됐다.
성 내·외측에서 구상유구, 보강석렬 등이 확인돼 시대별 구조 변화도 드러났다.
이번 조사로 부소산성과 나성 연접 여부는 규명되지 않았지만, 새로운 성문이 밝혀지면서 사비도성 북쪽 방어선과 도성 내 교통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마련됐다.
특히 북나성과 부소산성의 실제 연결 지점은 현재 부여 취수장(부소산성 내) 입구와 주변 일대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향후 추가 발굴 필요성이 확인됐다.
이에 국가유산청과 부여군, 백제문화재단은 이번 성과를 바탕으로 후속 조사에 대한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또한 나성 발굴 조사를 체계적으로 추진해 사비도성의 구조를 규명하고 백제 왕도의 실체적 복원에 기여할 방침이다.
또한, 가림성은 『삼국사기』에 백제 동성왕 23년(501년) 8월 축조 기록이 남아 있는 사비도성의 거점 산성으로, 축조 시기와 명칭이 분명하게 전해지는 드문 사례다.
이번 조사는 서문지와 남·북측 연결 성벽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백제 시대 초축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네 차례 이상 수·개축된 변천 과정이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서문지는 초축 단계(백제)에서 단시설과 배수시설이 마련됐고, 통일신라와 고려 전기에는 기와 쌓은 층과 초석, 계단시설을 갖춘 성문 진입부가 확인됐다.
고려 시기에는 기존 문을 폐기하고 약 5m 뒤로 옮겨 문루를 설치했으며, 조선 시기에는 입구를 좁혀 ‘凸’ 자형 방어 구조를 형성한 사실이 밝혀졌다.
북측 성벽은 백제에 의해 잘 다듬은 면석으로 ‘品’ 자형 석축으로 축성하기 시작했고, 고려·조선 시기에 걸쳐 바른층쌓기와 허튼층쌓기로 개축을 반복했다.
특히, 서문지 남측 일원은 급경사 암반 지형을 성토해서 성내 지형을 형성한 백제의 토목 기술 흔적이 뚜렷하게 확인됐고, 이와 같은 토목 기술을 바탕으로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도 재사용한 양상이 드러났다.
이번 발굴 성과는 가림성 서문지와 성벽의 구조와 시대별 변천사를 실증적으로 규명한 중요한 학술 성과로, 백제에서 조선에 이르는 장기간의 성문·성벽 축성 기술 변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에 부여군은 유적의 진정성 있는 정비·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체계적인 학술 조사와 보존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번 나성과 가림성 현장 공개는 언론과 학계 전문가뿐 아니라 지역 주민과 일반 시민 누구나 사전 신청 없이 참여할 수 있으며, 발굴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조사단의 설명을 들을 뜻깊은 기회가 될 것이다.